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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송명호 논어강의 2 위정




송명호 논어강의 2 위정


송명호 논어 강의 2 – 「위정」
2017•11•11 경산 노을카페

  앞으로는 강의를 할 때마다 다른 강의를 합니다. 이런 강의의 경우 정해진 교과 과정이 없어서 자신이 말했던 내용 중에서 자신 있거나 먹혔던 것만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만, 저는 매번 바꾸겠습니다.

  전국을 다니면서 강의를 한다면 이르는 곳마다 시도 한 수 남기겠는데요, 아주 못 쓰지만요. 20세기 최고의 문학 작품이라고도 하는 빠스쩨르나끄의 『닥또르 지바고』와 블라디미르 나보코브의 『롤리타』는 여행 詩입니다. 저는 상처받는 날의 쓸쓸함에서 시적 감응을 느끼는데요. 다음 강의는 3편 「팔일」입니다. 어디서 하게 될지 모릅니다. 초대가 없으면 못하구요.

1. 먼저 1편 「학이」와 「위정」의 관계를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전하는 「학이」 16꼭지는 자공이 남겨준 그대로가 아닙니다. 유자 왈, 증자 왈, 자하 왈을 빼면 10꼭지만 남으며, 자공과 관계된 2꼭지를 빼면 8꼭지가 됩니다. 그런데 「위정」은 24꼭지입니다. 지금 전하는 『논어』의 전통적 나누기가 499(가짜 『논어』 45꼭지 포함)꼭지이므로 이를 산술적 평균으로 나누면 대략 20여 꼭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이」와 「위정」은 내용에서 닮은 점이 많습니다. 「학이」에서 제자들의 말을 빼고 공자의 말만 놓고 본다면 「학이」 다음의 말들이 호덕, 위정, 호덕, 효행, 호학, 호덕이니 결국 ‘학, 호덕, 위정, 효행’입니다.

  「위정」도 시삼백, 위정, 공자의 자서전, 효행, 호덕, 호학이란?, 위정, 효와 위정, 호덕, 역사, 호덕이므로 결국 ‘학, 호덕, 위정, 효행’에 공자의 자서전 시와 역사만 덧붙어 있습니다. 자서전 시, 역사는 학에 속하므로 같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학이」가 「위정」의 반도 되지 않으므로 원래는 합쳐진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길이만으로 속단할 수 없습니다. 16편 「계씨」는 14꼭지이지만 가짜 『논어』를 빼면 4꼭지뿐이며, 18편 「미자」도 11꼭지이지만 9꼭지가 됩니다. 합쳤다면 「학이」는 남고 「위정」은 없어지겠지요.

  『논어』는 원래 고논어, 제논어, 노논어 3가지가 달랐다. 고논어는 21편, 제논어는 22편, 노논어는 20편이었다. 한 효문제가 『논어』 박사를 두었고 경제가 『논어』에 달통한 자를 수레에 태워서 서울로 모시었다. 이들 중에서 신중히 뽑아 등과하고는 중히 여기었다. 장우(張禹 ?-BCE5)가 원래 노논어를 배웠으나 제논어를 더하면서 번거로움을 빼 버리었는데 노논어 20편을 주로하고 제논어의 문왕, 지도 2편을 제외하고서는 『장후논(張侯論)』이라 불렀는데 지금 전하는 『논어』이다(其書初有古齊魯之異 古論二十一篇 齊論二十二篇 魯論二十篇 漢孝文置論語愽士 平帝召通論語者 駕軺詣京師 蓋慎其選而重茲科也 張禹本受魯論 兼講齊論 合而考之 删其煩複 主魯論二十篇 除齊論問王知道二篇 稱爲張侯論 今所傳論語是已 - 『논어유고論語類考』 「論語類考原序」 明 진사원陳士元 撰).

송명호 논어강의 1 중국철학사는 공자 욕하기다.



송명호 논어강의 1 중국철학사는 공자 욕하기다.



공자의 시작에 서다 강의 초고

- China 철학사는 공자 욕하기다.

  멀리서 오신 선비님들께 외람된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누리꾼은 저에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경북 영양의 따님과 결혼하였었는데 장인 어른 왈, 미투리 몇 개를 보따리에 싸서 두르고 하룻날을 걸어서 임청각까지 공부하러 다녔었다.

  그 글을 글을 읽으니 숙연하였습니다. 영양에서 안동과 가장 가까운 곳과는 짓선길로 24km이니 60리 길이다. 안동시청과 영양읍은 37km이니 굽이진 길로 다니면 100리 길이 훨씬 넘는다.

  당시는 이 공부가 과거 시험에도 쓸모없었다. 60리에서 100리 길 걸어가서 임청각의 선생님 앞에서 머리 조아리고, '저 아무개 공부 배우려 왔습니다'라고 말씀 드리는 젊은이... 선생과 제자, 아 그 가슴에 굽이치는 물결을 무어라 해야 합니까. 제자의 그 100리 길 천만금으로도 못 삽니다. 20여 년 동안 저는 수강료라는 것 안 받고 가르쳤으며 실제로 수백리 길 왔던 적도 있습니다.

  나는 공자학이 공자 이후의 지식인에게 버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지식인들만의 지적 특권이나 우월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음이라고 봅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철인이 다스리는 정치, 지적 폭군을 허용한다.

  기독교 또는 유태인의 선민사상은 이러한 사상을 만든 사람들 지식인의 선민사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금강경에서 붓다의 말은 수미산만큼이나 되는 칠보도 붓다의 한 마디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이는 금강경을 만들던 불승 집단들이 대중들을 깔보면서 스스로를 우상시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공자도 자긍심이 가득찬 지식인 집단을 君子라 합니다. 공자의 군자는 임금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우월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君子는 지성의 한계를 자각할 때에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