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3일 월요일

송명호 논어강의 1 중국철학사는 공자 욕하기다.



송명호 논어강의 1 중국철학사는 공자 욕하기다.



공자의 시작에 서다 강의 초고

- China 철학사는 공자 욕하기다.

  멀리서 오신 선비님들께 외람된 말씀을 드립니다.

  어떤 누리꾼은 저에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경북 영양의 따님과 결혼하였었는데 장인 어른 왈, 미투리 몇 개를 보따리에 싸서 두르고 하룻날을 걸어서 임청각까지 공부하러 다녔었다.

  그 글을 글을 읽으니 숙연하였습니다. 영양에서 안동과 가장 가까운 곳과는 짓선길로 24km이니 60리 길이다. 안동시청과 영양읍은 37km이니 굽이진 길로 다니면 100리 길이 훨씬 넘는다.

  당시는 이 공부가 과거 시험에도 쓸모없었다. 60리에서 100리 길 걸어가서 임청각의 선생님 앞에서 머리 조아리고, '저 아무개 공부 배우려 왔습니다'라고 말씀 드리는 젊은이... 선생과 제자, 아 그 가슴에 굽이치는 물결을 무어라 해야 합니까. 제자의 그 100리 길 천만금으로도 못 삽니다. 20여 년 동안 저는 수강료라는 것 안 받고 가르쳤으며 실제로 수백리 길 왔던 적도 있습니다.

  나는 공자학이 공자 이후의 지식인에게 버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지식인들만의 지적 특권이나 우월성을 인정해 주지 않았음이라고 봅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철인이 다스리는 정치, 지적 폭군을 허용한다.

  기독교 또는 유태인의 선민사상은 이러한 사상을 만든 사람들 지식인의 선민사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교는 금강경에서 붓다의 말은 수미산만큼이나 되는 칠보도 붓다의 한 마디보다 못하다고 말한다. 이는 금강경을 만들던 불승 집단들이 대중들을 깔보면서 스스로를 우상시하려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공자도 자긍심이 가득찬 지식인 집단을 君子라 합니다. 공자의 군자는 임금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우월적 존재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君子는 지성의 한계를 자각할 때에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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