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군의 일생 1
박정희(朴正熙)에서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그리고 다시 박정희(朴正熙)로!
교사에서 일본군장교로 돌아올 때는 다시 광복군으로!
일본군가에서 독립군가로!
일본군가에서 독립군가로!
최상천의 사람나라 14강
대박전쟁 ((1)) : <광복의 꿈 VS 일본의 개>
1. <대한민국 對 박정희>, 슬픈 주권전쟁
1) 세 가지 주권전쟁
(1) 1차 주권전쟁 : 국가 간 주권전쟁, <제국주의 VS 민족국가>
(2) 2차 주권전쟁 : <국가주권주의/독재자/군주주권 VS 인민주권(사람주권)>
(3) 3차 주권전쟁 : 기업주권 문제 <자본주권(돈 주권) VS 사원주권(사람주권)>
2) 한국의 1차 주권전쟁 : <제국주의 對 민족국가/주권국가>
(1) 한일 주권전쟁 : <대일본제국 VS 한민족>
(2) 결말 : 미+소의 분할점령->분단체제(위성국가, 독재국가)
3) 남, 북의 2차 주권전쟁 : <독재자 對 인민주권>
(1) 남 : <반공독재자 VS 대한민국(인민주권)> : 3대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2) 북 : <수령독재 VS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인민주권)> : 김일성 가문(3대 세습)
4) 전개, 현재
(1) 1차 주권전쟁은 최악의 실패 : 분할점령->분단독재체제
(2) 2차 주권전쟁
((1)) 남은 민주화 성공->제3의 황금시대(1998~2007)->반동 이명박근혜 정권
((2)) 북은 천황체제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김일성 신국
5) 1, 2차 주권전쟁에서 최악의 적은?
(1) <대일본제국 VS 한민족> 1차 주권전쟁에서는 대일본제국에 충성혈서를 바치고, 스스로 '일본의 개'가 된 자
(2) '박정희의 난'(5.16 반란)으로 4.19 민주혁명을 뒤엎고 대한민국을 전복한 반란 수괴
(3) 1972년 12월 27일, 김일성과 손을 잡고 대한민국을 일본제국=천황체제(유신체제, 유일체제)로 변조한 자
(4) 배반(친구, 아내, 동지, 민족, 국가, 파월장병, 인민), 반란, 간첩조작, 사법 살인, 재산 강탈, 상습 강간 등 엽기적 패륜 행위로 인륜을 파괴한 자
6) <대한민국 對 박정희>, 슬픈 주권전쟁
(1) 이 주권전쟁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한국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2) '일본의 개', 대한민국 파괴 주범이 대한민국 건설자, 영웅으로 둔갑 : 국립묘지
(3) 박정희의 완전한 청산 없이는 대한민국=인민주권국가는 환상일 뿐
7) 남북의 차이(민주화 성공, 수령체제)를 만들어낸 결정적 인물은?
2. 박정희 정체 엿보기
1) 새끼 천황
(1) 3~6학년 급장(12살~15살)
돌이켜보면 박정희는 귀엽고 예쁘게 생긴 친구였지요. 그런데도 학교 다닐 때는 그런 생각을 못 했습니다. 성품이 몹시 독한 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별명이 '악바리' '대추방망이'였지만 함부로 그렇게 부르지도 못했어요. 공부도 잘했고 해서 아이들이 그를 두려워했던 겁니다. 일본인 교사들도 그를 귀여워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박정희가 급장을 지냈던 3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급우들 가운데 그로부터 맞아보지 않은 아이들이 드물 정도였습니다. 동급생들보다 키가 작았던 박정희는 겁도 없이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있으면 체구나 나이가 위인데도 뺨을 후려갈겼어요. 반에서 가장 키가 컸던 권해도(권해도)는 박정희 보다 한 뼘 이상 키 차이가 났고 장가까지 들었는데 교실에서 뺨을 맞아야 했습니다.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보듯이 권군의 뺨을 때리던 박정희의 모습을 생각하니 지금은 웃음이 나와요. 늘 냉엄한 표정인 정희에 대해 아이들은 가까이하기를 어려워했어요.(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1*, 353~354쪽)
(2) 해석
((1)) 천재성 : '급장=새끼 천황' 꿰뚫어 본다
((2)) 새끼 천황(절대자) : 12~15세에 절대권력의 맛
((3)) 가둬놓고 조지기 : 꼼짝 마, 인격 모독, 절대권력자의 폭력(뺨)
((4)) 친구관계(수평/상호)->조폭체제(두목-부하,상명하복)
((5)) 뒤집기 성공 : 자궁 폭력->가둬놓고 조지
((6)) 4년 절대자->천황주의자
(3) 특징 : 약육강식의 체질화, 내면화
((1)) 무조건 폭력, 강자, 권력 추종->편입
((2)) 일생을 통해 단 한 번도 약자의 편에 서지 않음 : 약자는 먹이
2) 비로봉 사건(1934년 5월, 대구사범 3학년)
(1) 대구사범
((1)) 천황 숭배로 시작해서 천황 신격화로 끝나는 교육(졸업생)
((2)) 상호 존중 문화 : 요즘 일류대학보다 나음(조폭문화, 파시즘 일상화)
(2) 대구사범 시절(1932.4~1937.3)
((1)) 고독한 늑대 : 독서회 등 일체의 사회적 모임 외면(현준혁, 사회사상연구회 사건)
((2)) 성적 바닥 : 입학 100-51, 3학년 74-67, 4학년 73-73, 5학년 70-69
((3)) 일본어, 교련(아리카와 有川, 소대장)에는 발군의 실력
(3) 이 시기 박정희의 행동 해석
((1)) 수재 학교, 평등/존중 문화 부적응
((2)) 새끼 천황(절대권력)의 지위를 잃어버린 아이->우울한 늑대(권투, 검도, 서예, 나팔)
(4) 비로봉 사건
금강산 여행당시 일행이 머문 숙소는 일본인재벌이 세운 비로봉 호텔이었다. 당시 일본인 학생과 조선인 학생들은 따로 방을 사용했데, 문제의 발단은 반찬에서 차이가 난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인 학생 반장으로 있던 이정찬을 중심으로 조선인 학생들이 비밀회의를 갖고, "내일 호텔에서 판매하는 도시락을 보이콧하자"고 결의했다. 그 다음날은 비로봉난코스등산이 예정돼 있었다. 사전에 이 같은 '모의'정보를 입수한 인솔교사와 교무주임이 조선인 학생에게 입수한 자제를 요청했지만 학생들은 듣지 않은 채 이튿날 아침 호텔을 나서다가 현관에 도시락을 팽개치고는 그냥 등산에 나섰다. ...그런데 당시 박정희는 도시락을 가지고 산에 오른 데다 일본인 교사와 함께 식사를 해 다른 동기생들로부터 "이상하다" "친일파다" 등의 얘기를 듣기도 했다.(정운현, *실록 군인 박정희*,40쪽)
*이 사건으로 2명 퇴학, 1명 무기정학, 7명 1주일 근신(조갑제, *내 무덤을 침을 뱉어라2* 37쪽)
(5) 해석
((1)) 무조건적인 강자/체제 순응
((2)) 한국인 정체성 거부->일본인 편입---내 얼굴에 침을 뱉어라!
((3)) 배신에 따르는 부끄러움/수치심 상실
3) 전쟁놀이
(1) 사건
제자 박명래는 가을 운동회 때 박 선생이 지도하여 전쟁놀이를 단체경기를 보여준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목총을 만들게 하여 실을 잡아당기면 화약이 터져서 폭음이 들리도록 했다. 박 선생은 재빠른 아이들은 일본군으로, 동작이 굼뜨는 아이들은 중국군으로 편성하여 고지전을 벌이는 연출을 했다. 물론 중국군이 패퇴하는 것으로 끝났다. ...학예회 때도 박 선생의 학급에서는 <지원병 출정>이란 제목의 연극을 했다. 각본은 박정희가 썼다. 당시 군국주의 분위기에 호응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2* 87쪽)
(2) 해석 : '일본 편' 행동화
((1)) 일본인/침략자 편
((2)) 조센진/학생 대상화/수단화 : 전쟁놀이 도구
4) 기상나팔과 대장의 꿈
(1) 사건
((1)) 기상나팔 : "이 긴박한 시국에 게으르게 잠이나 자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2)) '선생질' 거부 : 문경보통학교에서 3년(1937~1939) 가까이 근무하는 동안, 누님 박재희를 찾아갈 때마다 "죽어도 선생질 더 못해 먹겠다"고 하소연
((3)) 대장의 꿈 : 긴 칼 차고 싶어서
(2) 해석 : 이미 일본인보다 더한 일본제국인으로 변신
((1)) 일본인/지배자를 넘어 일본제국주의자로 변신 완료
((2)) 조센징은 통치, 동원, 규율 대상 : 쫄다구---모태 공격
((3)) 조센징(통치대상)->일제인(지배자)->제국의 대장(최고 폭력 상징)이 꿈
3. 충성혈서 : '일본의 견마(犬馬)' 맹세
1) <일본의 개>가 되겠스무니다.
(1) 충성혈서
대한민국임시정부(1919~1945) 21년(1939) 3월 31일자 *만주일보* 7면에 <혈서(血書) 군관지원-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 부터->라는 제목의 4단 기사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훈도)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전략) 일계(일계)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두렵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서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동군)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는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는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2) 아리카와 대좌의 추천서
(3) 간도특설대 강재호의 인도로 국민복을 입고 입학시험 응시
간도특설대(간도특설대 1938~1945) 일본제국의 괴록국인 만주국이 동북항일연군+팔로군 등 항일 조직을 공격하기 위해 대부분 조선인으로 조직한 800~900여명 규모의 대대급 특수부대. 가장 잔인하고 악랄한 독립군 토벌부대---강재호, 김찬규(김백일), 송석하, 신현준, 박창암, 백선엽, 최남근
<부대가>
시대의 자랑, 만주의 번영을 위한
징병제의 선구자, 조선의 건아들아!
선구자의 사명을 안고
우리는 나섰다. 나도 나섰다.
건군은 짧아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쳐
대화혼(大和魂)은 우리를 고무한다.
천황의 뜻을 받든 특설부대
천황은 특설부대를 사랑한다.
2) 해석
(1)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폭력그룹/지배그룹 쑤시고 들어감 : 나이 사바사바, 아리카와 간도특설대 이용, 충성혈서-'일본의 개'자임
(2) 엄청난 열정과 노력으로 황군 장교(1944.7.1) : 만주 군관학교 수석 졸업(황제상), 일본육사 3등 졸업,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일본제국 군인
3) 충성혈서, 박정희의 정체
(1) 충성혈서가 진실이라면
((1)) 진짜 일본제국인
((2)) 패전->'천황폐하 만세!'를 부르짖으며 할복자살, 옥쇄(玉碎)해야 마땅
*타라와 옥쇄(1943.11.23.) : 수비대 5천 5백여 명 중에 포로는 146명(조선인 129명, 일본인 17명) 외에는 자살적 공격(가미가제) 또는 집단자살(玉碎)
((3)) '천황'이 항복도 하기 전에 재빠르게 부대 끌고 투항
(2) 충성혈서가 사기라면
((1)) 천재 사기꾼 : 충성혈서(일본의 개)->혁명공약(반공국시)->7+4 공동성명(민족통일)
((2)) 귀신도 속이는 사기 행각 :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군국주의자 행세
(3) 박정희의 진짜 정체는?
4. 오카모토의 비밀
1) 민족 세탁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
지난 72년 나는 도쿄에서 박정희의 만주 신경군관학교 동창생 두 명이 도쿄에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소문 끝에 그들을 만난 일이 있다. 만주군관학교 시절 박정희의 창씨명은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그곳을 졸업하고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했을 때 박정희는 창씨명을 완전히 일본사람 이름같이 보이는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로 바꾼다. 어렵사리 만난 박정희의 두 동창생은 만군시절의 박정희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박정희는 하루 종일 같이 있어도 말 한마디 없는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내일 조센징 토벌 나간다' 하는 명령만 떨어지면 그렇게 말이 없던 자가 갑자기 '요오시(좋다)! 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고함을 치곤 했다.
그래서 우리 일본 생도들은 '저거 좀 돈 놈 아닌가'하고 쑥덕거렸던 기억이 난다."(문명자,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66~77쪽)
2) 왜 명성황후 시해 주범 오카모토 류스노케(岡本柳之助)와 같은 성을 택했을까?
3) 개명 논란
(1) 조선(북한) 날조론
*이시완, <'박정희=오카모토 미노루'는 북한에서 시작된 네거티브>, *빅뉴스*(2012.12.5)
((1)) 1973년 *로동신문*에서 '오까모도' 처음 사용 : 날조
((2)) 이후 날조된 이름 '따라서' 사용 : 날조 증거는? 따라서 사용했다는 증거는?
((3)) '오까모도'는 조선(북한)의 날조? : 그럼 '미노루'는 누가 날조했을까?
((4)) <조선(북한)=날조> 주장이야 말로 황당한 반공공식
*남북 중 누가 더 많이 '날조'했는지는 조사해봐야. 남이 북 압도!
*남은 <'뻥' 나라> : 간첩 날조, 관제 빨갱이, 천안함, 무인기, 사기 천국
*북은 <'뻥튀기' 나라> : 혁명가문, 백두혈통
(2) 오카모토 관련 : 이렇게 많은 자료가 '오카모토 미노루'를 확인해 준다.
((1)) 조선(북한) *로동신문*(1973.8.11.) : '오까모토' 중위
((2)) *김형욱 회고록*(19079), 2권 34쪽 :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
((3)) 문명자,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 66쪽 : 일본육사 시절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로 개명
((4)) *일본육해군총합사전 제2판*(2005, 도쿄대학 출판부), <박 정희> 항목 : <일본명 岡本實> ---도쿄대학 간행물에서 아무 근거도 없이 이름 날조?---결정적 자료
((5)) *세계일보* 2006년 8월 9일자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은 왜 두 개였나' : '다카키 마사오'와 오카모토 미노루(岡本 實)' 둘다 박정희의 일본식 이름. "몇몇 재중동포들이 기억하는 '마쯔모도'도 있지만 이는 사실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5. <광복의 꿈 VS 일본의 개>
1) 극과 극의 혈서 : <조선독립만세 VS 죽음으로 일본제국에 충성>
(1) 조선독립만세
조선국민회 사건 : (중략) 1917년 장일환과 두 명의 조선국민회 핵심멤버인 배민수(숭실중학교 학생, 충북청주 출생)와 김형직(평남 강동군 정읍면에 있는 서당의 훈장)은 한국의 젊은 기독교인들이 전국적으로 모이는 평안장로신학교 개교일을 전후하여 보다 많은 조직원을 확보하였다. 배민수, 김형직, 그리고 노덕순은 그들의 손가락을 잘라 일본제국주의 피로써 반대하기 위하여 "조선독립만세"라는 혈서를 썼다.(양성철, *박정희와 김일성*, 17~18쪽)
((1)) 이 사건으로 김형직(1894~1926)은 9개월 옥살이
((2)) 출옥 후 광제한의원 운영, 일설에 의하면 4년제 백산학교도 운영
((3)) 1924년 늦은 가을 일경에 다시 체포, 탈출
((4)) 1926년 6월 지병으로 사망(33세, 김일성 15세)
(2) 극과 극의 두 혈서 : <조선독립만세 VS 대일본제국만세>
김형직(24세) "조선독립만세 : 9개월 감옥살이-죽음
박정희(23세) "한 번 죽음으로 (일본제국에) 충성" : 만주군관학교 특별입학의 영광!!!->일본육사->황군 장교->소원성취
2) 광복군(1940.9.17) VS 만주군관학교(1940.4)
3) 건국동맹(1944.8.10.) VS 황군 장교(1944.7.1)
6. 순간 변신 : '일본의 개'에서 광복군 장교로
1) 황군 장교 1년 1개월
2) 위험한 순간 변신 : 대일본제국만세!->광복군 화이팅!!!
(1) 항복과 광복군 변신 : 충성혈서, '일본의 개' 맹세는?
(2) 민족/신분 逆 세탁 : 황군->광복군, 오카모토 미노루->박정희
데데쿠루 데카와 미나미나 고로세!(튀어나오는 적들은 모두모두 죽여라!)
(3) 대장의 꿈->천황의 꿈->박정희의 난(5.16)
댓글 없음:
댓글 쓰기